[경향-세상읽기] 생시몽이 이언주 의원께

 

[세상읽기] 생시몽이 이언주 의원께

 

[세상읽기]생시몽이 이언주 의원께

이언주 의원님, 안녕하십니까. 저는 앙리 드 생시몽이라 합니다. 사람들은 저를 사회주의운동과 사상의 창시자라고 부릅니다만 막상 저는 사회주의라는 말은 써본 적도 없습니다. 그저 인류가 이제부터는 모두가 모두를 평등한 형제와 자매로 사랑하고 아껴야 하는 시대로 진입했다는 주장을 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얼마 전 의원님께서 파업하는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밥하는 아줌마들’이라고 부르며 욕까지 퍼부으셨다는 소식을 듣고 이렇게 땅속에서나마 편지를 쓰게 되었습니다. 

저도 나름 프랑스의 가장 오래된 뼈대 있는 귀족 가문 출신으로, 백작 작위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고 굳게 믿었습니다. 그래서 16살 나이에 미국 독립혁명에 참전하여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고, 또 프랑스혁명 때에는 백작 칭호도 떼어버리고 열심히 참여했다가 일이 복잡하게 꼬여 단두대에서 목이 잘릴 뻔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세상에 ‘평등’처럼 허망한 말이 없더군요. 많은 사람들이 이 말을 당연한 것처럼 입에 올리게 되었습니다만, 막상 세상은 혁명 이후에도 제가 어렸을 때의 신분 사회와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습니다. 

돈 있고 집안 좋은 사람들은 여전히 자기들의 피가 다른 색이라고 믿으며 대중들을 자기들의 지배 대상이라고 여기고 있었고, 힘들고 천한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주눅이 들어 힘 있고 돈 있는 이들의 눈치를 보며 굽실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인류가 평등과 박애를 실현하지 못하고 이런 신분과 위계 질서를 고집하다가는 다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바로 ‘산업’이라는 (외람되지만 이 말을 만든 사람이 바로 저입니다) 것 때문이었습니다. 전통 사회에서는 농사짓는 사람 따로 있고 그들을 지배하는 귀족 따로 있는 게 정상적인 질서였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산업사회’는 그렇게 구성되지 않습니다. 모두가 각자가 맡은 기능이 있고, 그 한 사람 한 사람의 기능과 임무가 빈틈없이 유기적으로 맞아떨어질 때에만 전체가 한꺼번에 기능할 수 있는 것이 산업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어느 부분이라도 빠진 곳이 생기면 모두의 행복과 자유는 물론 물질적인 안녕까지도 위협받게 됩니다. 따라서 이러한 사회는 모두의 행복이 다른 모두에게 의지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서로가 서로의 행복과 안녕에 대해 관심과 애정을 가질 때에만 성공적으로 작동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평등’이 우리에게 선택의 여지가 없는 절대적인 가치가 되는 이유입니다.

‘밥 짓는 아줌마’들에게 욕을 날리신 이언주 의원님께 아마도 건물의 정화조 청소원 분들은 그야말로 불가촉천민쯤 될 듯합니다. 하지만 그분들이 한 달 아니 1주일만 쉬어보십시오. 도시 전체는 생지옥이 됩니다. 의원님이 여의도에서 어떤 ‘기능’을 얼마나 하고 계신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의원님 한 분 당장 사퇴하신다고 해서 아쉽고 불행할 사람이 얼마나 될지는 잘 가늠이 안되네요.

저도 처음에는 ‘산업사회’를 조직하는 원리로 그저 과학과 효율성이면 족하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만년에 자살 소동을 겪고 한쪽 눈을 잃고 나자, 위에 말씀드린 진리가 선명하게 보이게 되었습니다. 산업사회는 두 가지 원리로 조직될 때에만 인류의 파멸을 막을 수 있습니다. 첫째, 모든 사람들이 서로를 형제와 자매처럼 평등하게 사랑할 것. 둘째, 가장 숫자가 많고 가장 힘든 처지에 있는 사람들의 행복을 개선하는 것을 사회 조직의 최우선 과제로 삼을 것.

의원님과 학교 급식 노동자와 정화조 청소원은 모두 산업사회의 평등한 형제자매이며 모두가 모두에게 똑같이 소중합니다. 그리고 의원님의 임무는 무수히 많은, 하지만 너무나 답답한 상황에 처해 있는 근로 서민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몸을 던지는 것입니다. 산업혁명이 제대로 시작되지도 않았던 200년 전의 저에게도 그토록 자명하게 보였던 진리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살고 계신 의원님께는 어찌 그렇게 낯설까요? 

그렇다면 의원님께 제 귀족 작위를 드릴 테니 18세기 프랑스로 오셔서 백작 부인이 되시고, 대신 제가 의원님 자리를 넘겨받아 2017년의 여의도로 가서 ‘국민의 대표’ 노릇을 하는 게 어떨까요? 

 

 

2017. 07. 14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장

 

 
원문보기_경향신문 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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